판결문으로 보는 대한민국의 사건(미스터리 사건사고 게시판과 동시연재)

살인 vs 사고사, 강서구 호텔 중국인 7세 여아 사망 사건

세피로트의나무 2021. 7. 23. 02:03

 

 

0. 들어가기 전에

이 사건에는 주로 4명이 등장한다. A, B, C, D로 지칭하기로 한다.

 

A : 40대 중국인 남성. 사건의 피고인이자 사망자 B의 친아빠, C의 전남편, D의 남자친구

 

B : 7, 사망자. AC의 친딸

 

C : A의 전처, B의 친엄마

 

D : A의 현재 여자친구이자 동거인.

 

  사망한 피해자도 중국인, 용의자인 피고인도 중국인인데 대한민국 법원에서 사건의 재판이 이루어진 이유는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서울시 강서구의 한 호텔이었기 때문이다.

 

  1. 사건개요

 

  2019. 8. 8 새벽 서울시 강서구 한 호텔에서 7세의 중국인 여자아이 B가 호텔 욕조에서 사망하였다. 호텔방을 나갔다 들어온 아이의 아빠 A가 욕조에 빠진 B를 발견해 호텔 직원과 119에게 도움을 청했고 심폐소생술 등을 하다 병원으로 옮겼으나 결국 사망하였다.

 

사고로 보이던 이 사건은 수사기관이 수상한 점을 포착하며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2. 사건 발생 이전의 정황

 

  중국인 남성 AC와 결혼해 사망한 피해자 B를 낳고 이후 이혼한 후 여자친구 D를 만나 동거하였다. 그러면서도 한달에 한 번 정도는 피해자와 만나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여자친구 DAB 부녀가 만나 시간을 보내면 자신과 A 사이에 안 좋은 일이 벌어진다면서 B마귀라고 부르며 극도로 증오했다.

게다가 A와 동거하면서 두 차례 유산을 하게 되자 D는 이 유산의 불행이 B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더욱 더 B를 미워하게 되었다.

 

  3. 의문점

 

  A, B 부녀는 2019. 8. 6 김포공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 2019. 8. 10 ~ 8. 15에 열리는 한중교류 무용공연에 B가 참여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입국해 딸을 데리고 한강유람선에 탑승한 A는 여자친구인 D와 문자로 대화를 나눴는데 그 내용이 범행계획을 공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문자 및 위챗에 의한 대화에 대해서도 A는 검찰에서의 진술과 법정에서의 진술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였다.

 

 

사망한 B의 시신을 부검한 부검의는 사인을 익사로 규정하면서도 사망한 욕조의 수심이 24cm에 불과한 점 등을 들며 익사가 일어나기에는 부자연스러운 면이 있다고 하면서 사망의 과정에 타인의 외력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정확한 판단은 수사 등을 통해 밝혀내길 바란다는 판단의 여지를 열어두는 부검감정결과를 내놓았다.

 

또한 수사기관 측에서 자문을 요청한 법의학자 대부분(판결문에 등장하는 총 5명의 법의학자 중 4명의 법의학자)B의 사망이 타살로 보인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A가 방을 비운 2019. 8. 8. 00:42 ~ 01:41분 경의 약 59분동안 AB의 객실에 출입한 다른 사람은 없었다. , 이것이 타살이라면 범인은 A가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검찰은 사망한 B의 아빠 A가 자신의 여자친구인 D와 공모하여 호텔 욕조 물 속에서 목을 졸라 자신의 친딸을 살해했다고 판단, 살인죄로 기소한다.

 

  4. 재판 같은 정황, 같은 증거, 다른 판단

 

    0). 재판의 쟁점

 

  이 재판의 쟁점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피고인 A가 여자친구 D와 피해자를 살해할 것을 공모했다는 것이 인정되는가?

 

피해자의 사망에는 피고인의 경부 압박이 작용했다는 것이 인정되는가?

 

피고인에게 피해자를 살해할 동기가 있다는 것이 인정되는가?

 

이 쟁점에 대한 판단에서 같은 정황, 같은 증거를 두고 1심과 2심의 판결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1.) 1(서울남부지방법원) - 유죄(징역 22)

 

 

  1심 재판부는 피고인 A에게 살인죄 유죄를 선고하며 징역 22년을 선고하였다. 재판부는

 

- 피고인은 여자친구가 피해자를 극도로 증오하는 것을 잘 알면서도(그 증오는 일시적인 것이 아닌데도) 상당한 기간동안 연인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를 살해하라고 하는 여자친구를 달래주기 위해서 맞장구를 쳤을 뿐이라는 피고인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게다가 피고인은 여자친구의 말에 단순히 동조하는 것을 넘어서 범행 시한을 설정하고 결의를 다지는 것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다.

 

- 피고인이 여자친구에게 보낸 문자 중 오늘 밤 필히 성공한다는 문자를 보낸 것은 피해자를 살해하라는 여자친구의 메시지에 대한 응답이라는 검찰에서의 진술이 응급실에서 응급상태를 잘 극복하라는 뜻이었다는 법정에서의 진술보다 설득력이 있다. 법정에서의 진술은 문맥에도 전혀 맞지 않아 받아들이기 어렵다.

 

- 피고인 측은 곧 뒤이어 우리 이런 이야기 하지 말자”, “우리 진정하자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하지만, 그 짧은 1,2분 사이에 공모의 의사가 변심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 피해자의 사망 전후 피해자와 함께 있었던 사람은 피고인 이외에는 없다.

 

- 피해자 시신에서 발견된 양쪽 눈부위, 눈꺼풀결막, 입안 점막에 나타난 점출혈의 흔적은 경부 압박의 흔적으로 보인다.

 

- 피해자의 경우 경정맥이나 쇄골 아래 정맥에 카테타(인공관)을 삽입했다는 기록이 없다. 따라서 피해자의 시신 목 연부조직에서 발견된 출혈의 흔적은 의료시술이 아닌 경부압박의 흔적으로 보인다.

 

- 종합하며 보면 피해자의 점출혈과 목 부위 출혈에 가하여진 외력은 경부압박 이외의 원인으로 나타난 것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으므로(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글이 길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따로 설명하겠음)

 

피해자의 사망 당시 피해자와 함께 있던 유일한 사람인 피고인이 손으로 피해자의 목을 조르면서 욕조 물 안으로 눌러넣어 피해자를 익사 및 경부압박 질식사로 사망하게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라면서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 7세의 어린 친딸을 살해한 끔찍한 범행이라면서도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피해자를 성실히 양육해 온 정황이 있고, 피해자를 극도로 증오하는 여자친구의 요구와 주도에 의한 것인 것, 범죄전력이 없다는 점을 들어 징역 22년을 선고하였다.

 

피고인 A는 즉시 항소하였다. 검찰 역시 징역 22년은 너무 가볍다며 항소하였다.

 

    2.) 2(서울고등법원) - 무죄

 

 

2심 재판부는 1심의 유죄판결을 뒤집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재판부는

 

- 피고인이 여자친구에게 오늘 호텔 도착 전에 필히 성공한다,” 등의 문자를 보낸 사실은 인정된다. 그러나 그 직후에 우리 이런 이야기 하지 말자” “우리 진정하자라는 메시지를 발송하였다.(1심과 정반대로 받아들인 것)

 

- 또한 피고인의 여자친구의 남동생(누나가 잘못되면 피고인과 가족들을 해코지하겠다던 그 남동생)이 피고인의 여자친구가 자살을 시도한 20197월 말 병원에 입원한 이후 201986,7일에 피고인에게 누나가 상태가 많이 안 좋다. 왜 그러냐는 등의 문자를 보냈고 피고인은 이에 대한 답장으로 자신이 위로해주고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는 피고인이 자살시도를 한 여자친구를 달래주거나 진정시키기 위해 여자친구의 말에 동조하는 척 했다는 주장에 부합하는 정황이다.

 

- 피고인과 여자친구의 위챗 대화내용을 보면(대화의 P는 피고인과 여자친구 사이에서 유산한 아이를 가리킨다.) 피고인은 피해자에 대한 증오를 지속적으로 표현하는 여자친구에게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피해자가 피고인의 딸이고, 피고인 자신은 부모로서 피해자를 돌볼 책임이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거듭하여 설명하며 이해해 달라고 하고 있다.

 

- 피고인이 사건 당시에 도움을 청한 호텔 직원과 출동한 119 구급대원은 당시 피고인에 대해 크게 울며 통곡하였고, 통상적으로 사고를 당한 자녀를 보았을 때 부모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며 범죄의 의심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였다.

 

 

- 피해자의 친모 C는 피고인에 대해 피해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했을 리 없다면서 피고인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였다. 피고인이 피해자를 데리고 한국에 온 것도 무용공연에 데려가 달라고 자신(C)이 부탁한 것이며, 만약 피고인이 피해자를 학대하는 낌새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절대 피고인을 피해자와 함께 한국에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술하였다.

 

- 법정에 제출된 증거에 피고인과 피해자가 중국, 마카오 등을 20153월부터 20197월경까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촬영한 사진이 있다. 피고인의 여자친구가 피해자에 대한 지속적인 증오심을 표출한 2018년경이 겹친 시기인데도 두 부녀의 사진은 여느 부녀의 모습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또한 이 증거들이 피고인에게 유리하도록 허위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

 

- 종합하면 피고인의 여자친구의 증오심 외에는 달리 피고인에게 피해자를 살해할 동기가 있었다고 볼 만한 증거는 없으며, 이것만으로는 피고인이 친딸인 피해자를 살해할 동기로 작용했다고 보기 어렵다.

 

- 피해자의 친모인 C는 수사과정에서 딸을 다시 힘들게 하는 것이 싫다면서 피해자의 시신을 부검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그런 C를 피고인이 부검에 동의하자고 설득하였다. 만약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고 사고로 위장한 것이라면, 자신의 범행이 드러날 수 있는 부검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 피해자의 시신의 안면부에서는 점출혈만 존재할 뿐 울혈은 발견되지 않았다. 법의학자인 증인의 견해에 의하더라도 경부압박으로 경정맥이 막혀 사망하는 과정은

 

얼굴에 울혈 의식 소실 얼굴에 점출혈 사망 의 과정인데

 

경부압박으로 인해 사망하였다면 얼굴에 점출혈 말고도 울혈도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울혈은 발견되지 않았다.

 

검찰과 1심 재판부는 이에 대해 피고인이 피해자의 목을 조르다가 피해자가 거의 죽어가는 막바지 단계에 맞추어 목조름을 풀어 얼굴울혈이 풀리고 점출혈만 남은 채 사망하였다고 보고 있는데, 이에 대한 별다른 증거가 없으며 이는 무리한 주장으로 보인다.

 

- 손으로 목을 조르는 액살은 목의 표피 박탈, 손톱자국, 피하출혈 등이 수반되는데, 피해자의 목에는 손으로 누른 자국과 손톱자국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 밖에도 액사에서만 특유하게 발생되는 소견은 확인되지 않는다.

 

- 피해자의 응급기록에 ‘2019. 8. 8. 02:26 기도 삽관이라는 기록이 있다. 피해자의 목 출혈은 기도 부근에서 관찰되는데, 이에 따르면 피해자의 목 쪽 출혈이 기도 삽관에 의해 발생한 것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증거기록에 의하면 피해자는 평소에 집에 있는 욕조 안에서 씻으면서 노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인데, 실제로 피해자 시신에서 두피 부분에서 출혈이 발견된 점, 물이 순간적으로 기도 안으로 들어가면 상당한 패닉에 빠질 수 있다는 의학적 소견, 목의 경정맥은 약 2kg 정도의 약한 힘으로도 막힐 수 있다는 의학적 소견, 욕조의 크기는 가로 159cm, 세로 79cm, 욕조 물 깊이 24cm면 키 130cm, 몸무게 27kg의 피해자가 충분히 물속에 몰입될 수 있다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가 욕조 안에서 미끄러져 쓰러진 뒤 물에 잠겨 기도에 물이 들어가고 목이 접혀 경정맥이 막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라고 판단하여 1심의 유죄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 A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3). 3(대법원) - 무죄

 

  대법원은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며 피고인 A에 대한 무죄판결을 확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