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피로트의나무 2021. 5. 15. 17:24

1. 사건개요

 

2008910일 이른 아침 인천 만월산의 한적한 등산로에서 인근주민이던 50대여성이 칼에 수차례 찔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사인은 경부 자창(목을 찔림)이었다.

 

당시 인천 만월산 사건 현장에는 두 개의 피우지 않은 장미 담배가 증거로 남아있었다.

DNA 분석 결과 한 개비에서는 피해자의 타액이, 나머지 한 개비에서는 신원불명인 남성의 타액이 검출됐다.

 

경찰은 피해자 주변인물을 물론 장매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DNA를 대조하여 범인을 추적했다.

 

 

조사대상 1054, 단일 사건으로는 DNA를 최다 수집한 전례 없는 수사가 이뤄졌다. 그러나 DNA가 일치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이후 이 사건은 4년간 미제로 남았다.

 

2. 밝혀진 DNA의 주인

 

그러던 중 그 DNA가 전주에서 절도를 저지르고 현재 인천구치소에 수감중인 A와 일치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건 현장에서 버려진 담배꽁초와 ADNA가 동일인이라는 것.

 

전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빈집털이 등 절도행각으로 검거된 A가 지니고 있는 A 딸의 다이어리와 만월산 사건현장 인근 배수로에서 발견됐던 다이어리 속지의 필적이 유사했던 것도 의심이 갔다.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용의자 A의 주장은 간단했다. 자신은 그날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것. 20088월 중순 인천을 뜬 뒤로 만월산은 가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3,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

 

- A1989. 11. 28. 인천지방법원에서 준강도죄로 징역 26월에 집행유예 3, 1995. 6. 9. 서울고등법원에서 강간치상죄로 징역 16, 1997. 9. 19. 서울고등법원에서 강도강간죄 및 특수강도죄로 징역 10, 2008. 11. 19. 전주지방법원에서 야간건조물침입절도죄 등으로 징역 1, 2009. 10. 1. 전주지방법원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간죄 등)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재판 당시 인천구치소에서 수형중(전주지방법원에서 형을 선고받고 이후 전주구치소에서 인천구치소로 이감)이었다.

 

- 범행 당시 용의자로 보이는 남성을 목격한 목격자 부부의 말은 등산로를 올라가다 여자 비명소리를 들었고 올라가다 한 남성을 봤는데 손에는 신문지로 만길이 약 30cm 정도 되는 얇은 막대기 같은 것을 들고 있었고 사람들이 올라오자 등산로가 아닌 길로 도망쳤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 목격자 부부 중 아내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그날 본 사람과 비슷한 사람을 골라보라는 수사기관, 법원의 요구에 모두 피고인인 A를 지목하기도 했다. (수사기관에서 지목할 당시에 A가 용의자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은 상태였다.)

 

- 또한 만월산에서 노숙을 하고 있었다는 한 노숙자는 아침에 잠을 자다 근처 배수로에서 누군가 빨래를 하는 소리에 잠에서 깼고 소리가 난 곳으로 가보니 배수로 쪽에 점퍼, 바지, 와이셔츠, 장미 담배 빈 갑 등이 있었고, 배수로 안 쪽을 들여다보고 과도와 라이터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이에 따라 사건 발생 17일 후인 2008. 9. 27.  신고를 받고 같은 날 경찰이 범행 현장 부근 만월산터널 옆 배수로의 현장을 확인한바, 그곳에서 점퍼, 검정색 바지, 검정색 체크무늬 긴팔 와이셔츠, 과도 1, 다이어리 속지로 보이는 찢겨진 종이 1장이 둘둘 말린 것을 노란색 테이프가 감싸고 있는 칼집 모양의 물건 1, '장미(ROSE)' 담배 빈 갑, '장미(ROSE)' 담배 꽁초 등을 수거하였다.

 

- 발견된 과도에서는 소량의 혈흔이 검출되었으나 DNA는 검출되지 않았다. 국과수에서도 가해흉기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 발견된 다이어리 속지로 보이는 종이에 써진 필적이 용의자 A의 딸의 필적과 유사해 보이긴 했으나 정확한 감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국과수의 결론이었다.

 

여기에 현장에 떨어진 담배에서 ADNA가 검출, 검찰은 A가 등산로에서 피해자의 금품을 노리다가 살해했다고 판단하여 강도살인죄로 기소한다.

 

4. 재판

 

  1.) 1(인천지방법원) - 무죄

1심 재판에서는 피고인 A의 강도살인죄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다.

 

- 현장의 장미 담배 2개피는 공소사실의 직접증거가 아닌 간접증거이며, 피고인의 타액이 묻은 담배 1개피가 이 사건 범행과 무관한 경위로 떨어져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노숙자의 진술은 장면을 목격한 것이 아닌 빨래를 하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어서 그것이 범인이 범행을 은폐하려는 과정에서 낸 소리인지 단정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소리를 낸 사람이 피고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해당 배수로 역시 범행 발생 후 17일이 지나서야 수색이 이루어졌고 그 동안 여러사람이 다녀갔다는 것이 해당 노술자의 진술이기도 하다.

 

- 과도에서 유전자가 검출되지 않았고, 가해흉기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국과수의 의견 등을 종합하면 해당 과도가 이 사건 범행도구라고 단정할 수 없다.

 

- 해당 배수로에서 발견된 옷가지가 피고인의 것으로 보이고, 해당 과도가 피고인의 주거지에서 사용하던 과도와 동일한 것으로 보이고, 칼집으로 사용된 다이어리 속지가 자신의 다이어리에서 찢은 것으로 보이고 글씨체도 자신의 것으로 보인다는 피고인의 딸의 진술에 대한 진술조서는 피고인이 증거로 쓰는 것에 동의하지도 않았고 재판과정에서 진술자가 성립의 진정을 인정(즉 진술조서의 내용이 자신이 말한 대로 적혀있다고 진술자가 확인해주는 것)이 되지 않았으므로 증거능력이 없다.

 

- 목격자가 목격한 용의자의 인상착의는 베이지색, 황토색 주름없는 바지에 밤색 바탕의 가로 줄무늬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했는데, 배수로에서 발견된 옷가지는 검정색 바지에 검정색 체크무늬 긴팔 와이셔츠라서 전혀 다르다. 배수로에서 범행흔적을 은폐하였다는 남자와 목격자들이 본 남자가 동일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등을 이유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2.) 2(서울고등법원) - 유죄(, 강도살인이 아닌 살인죄 한정 유죄. 징역 20)

그런데 항소심에서는 1심의 무죄판결을 뒤집고 살인죄에 대해 유죄로 판결하고 징역 20년을 선고하였다.

 

특이한 점은, 항소심 과정에서 별다른 추가 증거가 나오거나 새롭게 발견된 사실은 없었다는 것이다. 즉 같은 증거, 같은 정황을 두고 재판부마다 판단이 정반대로 갈렸다는 것이다.

 

- 현장에서 발견된 담배는 같은 종류의 담배 2개피의 필터부분이 똑같이 불에 그슬려있고, 그슬린 정도도 비슷하다. 이는 한 사람이 한꺼번에 2개피를 그슬린 것으로 보이고, 한번에 같이 버려진 것으로 보인다.

 

- 담배 2개피에서 하나는 피해자의 DNA, 다른 하나는 피고인의 DNA가 나온 것을 보면 피고인과 피해자가 이 담배가 버려진 시기에 만난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의 DNA가 담배에서 검출, 범행 당일 담배가 수거, 용의자의 인상착의가 피고인과 비슷한 것, 유전자 감정 의뢰 당시에는 이 사건과 피고인과의 관련성을 전혀 알 수 없었다는 등의 사정을 종합하면 1심이 말하는 알 수 없는 경위로 이 담배가 현장에 떨어져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배제할 수 있다.

 

- 담배 2개피는 모두 외피가 변색이 되지 않았다. 당시 인천에서는 2008. 9.3 이후로 계속 이슬현상이 있었다. 사건현장은 산이어서 밤 사이 이슬현상이 상당했을 것인데, 그 이슬에 젖었다면 외피에 변색이 있었을 것이다. 즉 그 담배는 이슬이 발생할 겨를이 없도록 범행 당일 아침, 범행 순간에 버려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 칼집으로 쓰인 다이어리 속지는 피고인의 딸의 다이어리에서 찢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해당 과도도 이 범행에 쓰인 흉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1심은 노숙자가 발견한 배수로에서 발견된 옷가지(검정 바지, 검정 긴팔 체크 와이셔츠)와 목격자가 목격한 용의자의 인상착의의 옷(베이지색 바지, 밤색 가로무늬 반팔)이 다르다는 것을 무죄의 근거로 봤으나, 범행 직후 증거를 인멸하려 빨래를 한 것이라면 그 옷을 가져가는 것이 자연스럽고 굳이 시간을 들여 빨래를 하고 그걸 하나씩 펼쳐두고 버리고 가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즉 해당 배수로에서 발견된 옷가지는 이 사건 범행과 무관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 목격자가 목격한 용의자의 모습보다 수사기관과 1심 법정에서 본 피고인의 사진이 살이 빠진 모습이라 같은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목격자의 증언은 오히려 신빙성이 높다. 수사기관과 1심 법정에서 본 사진은 사건 발생 후 25일이 지난 시점으로, 그 기간 동안 피고인은 노숙생활을 하며 천안, 전주 등을 떠돌던 시점이라, 이 노숙생활 도중 살이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 목격자의 이 사진은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라는 진술은 오히려 더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 흡연과 담배에 대한 피고인의 진술이 사건 현장의 담배에서 발견된 DNA가 피고인의 것으로 밝혀지기 전과 후의 태도가 너무 다르다.

 

등을 이유로 유죄로 판단, 다만 강도살인은 강도범행의 착수가 이루어지고 강도행위가 종료되기 이전에 살인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미 살인을 저지르고 이후에 피해자의 물품을 가져간 것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강도살인이 아닌 살인에 대한 유죄를 인정하며 징역 20년을 선고하였다.

 

불고불리 원칙 위반 아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불이익을 주지 않는 한 법원은 검사의 공소장변경이 없이도 다른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강도로 기소되었는데 때리기만 하고 재물을 뺏은 건 입증이 안되는 경우 법원은 폭행죄 유죄만 선고하는 것이 가능하다. (반대의 경우는 더 무거운 범죄를 공소장변경 없이 인정하는 것이므로 방어권에 불이익일 주는 것이라서 안되고)

 

  3.) 3(대법원) - 유죄(징역 20)

상고가 기각되어 대법원에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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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건, 같은 증거, 다른 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