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피로트의나무 2021. 5. 13. 03:09

1. 사건개요

 

201328일 저녁 인천공항 고속도로에서 사망사고가 접수되었다.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28일 저녁, 인천공항 고속도로 공항방면 15.4km지점 3차로에 한 남성이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곧 달려오던 차량에 의해 역과(깔고 지나감)되어 사망했다.

 

그런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고속도로순찰대와 119 구급대에 따르면 사망자의 모습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영하 15도의 살을 에는 듯 한 날씨에 고속도로 3차선 안쪽에 누워있는 그는 얇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신고 있던 슬리퍼는 벗겨져 맨발인 채였다.

 

목격자는 "거기는 고속도로 한복판이기 때문에 사람이 있을 수가 없는 자리다. 사람이 거기에 누워 있는 자체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얼마 후, 한 남자가 사고 현장으로 다가왔다. 불과 40분 전까지 자신이 운전하던 차량에 사망한 B 씨와 함께 타고 있었다는 남성은 영종도로 가던 도중 "내려달라"B 씨의 요구에 속도를 줄였고, 차가 완전히 정차하기도 전에 조수석에 타고 있던 B 씨가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고 했다. 그는 B 씨의 20년 지기 동업자 A 였다.

 

경찰은 동업자를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떨어뜨려 다른 차에 치여 숨지게 한 혐의로 A 씨를 구속했다. 이 빠른 속도로 진행하는 고속도로에서 사람이 추락할 경우 떨어질 때의 충격 또는 뒤따라오는 차량에 치여 사망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시속 약 40km로 진행하던 차에서 하차시켜 줄 것을 요구하는 피해자를 떨어뜨렸고, 추락한 피해자를 구호하기 위해 차량을 즉시 정차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 둘 사이엔 무슨 일이?

 

이하는 재판과정에서 인정된 사실관계중 일부내용이다.

 

- AB는 친구이자 동업자 관계로, A2012. 10. 22 경 서울시 종로구의 1570여평의 부동산을 구입한 다음 빌라를 신축, 분양할 목적으로 B의 해당 부동산을 61억원에 구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 A는 그 돈을 다른 투자자들에게 빌려 마련했는데, 그렇게 마련한 3억원을 계약금으로 B에게 줬다.

 

- A의 계획은 해당 부동산에 대한 건축허가를 받은 후 은행에게 그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나머지 잔금 58억원을 2013. 1. 30까지 B에게 지급할 계획이었다.

 

- 그런데 2012. 11. 19경 서울 종로구청장이 그 부동산 토지에 대한 개발행위허가 신청을 반려함으로서 기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 이 차질에 대해 A는 허가되는 일부 토지만이라도 먼저 개발에 들어갈 생각이었으나 B는 이 개발행위허가 신청 불허가에 대한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결과를 기다려보려는 생각으로 A의 의견에 반대했고, 이후에는 채무불이행 등을 이유로 매매계약을 해지하려는 생각도 했다.

 

 

- 사건 당일(2013. 2. 8) 오전부터 A는 계속해서 B의 사무실로 연락을 했으나 연락을 받지 않자, B가 퇴근할 무렵인 18:10 경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는 B의 집으로 찾아가 방금 귀가한 B를 불러낸 후 자신이 운전하는 SM5 차량에 태우고 출발, 처음에는 행주산성에 가서 저녁을 먹자고 했으나 강변도로를 진행하던 중 목적지를 영종도로 변경하며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로 진입하였다.

 

- B18:56 경 도로에 떨어져 3차로에 쓰러 있었고 이후 약 130초 후 3차로에서 오던 승용차에 역과, 현장에서 두부압착 등으로 인한 다발성 실질장기손상 등으로 사망하였다.

 

 - A는 사건 사고 직후 곧바로 119에 신고하거나 피해자에게 전화하지 않고 지인인 S5차례 통화를 했고 통화목록에서 S와의 통화기록을 삭제했다.

 

- A는 승용차 안에서 소주를 한 두 모금 마셨다고 주장하였으나, 사고시각으로부터 약 2시간 10분 정도 경과한 시점의 호흡측정결과 혈중알코올농도가 0%로 나왔다.

 

이에 대해 검찰은 A를 살인과 감금치사로 택일적 기소하였고 재판이 열렸다.

 

1심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렸다.

 

3. 재판

 

0.) 택일적 기소란?

 

예전에 예비적 기소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예비적 기소는 X, Y 죄로 기소하면서 우선 X의 유무죄를 다루고 만약 X가 무죄라면 Y에 대해 다뤄달라는 기소로,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판사는 이 우선순위대로 재판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택일적 기소는 그 우선순위가 없습니다. X,Y로 기소하고 이 중에 해당하는 것을 재판해달라 라는 기소가 택일적 기소입니다. 이에 대해 어떤 죄로 판단할지 판사가 선택하면 됩니다.

 

1.) 1(인천지방법원) - 무죄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림 1심재판에서 재판부는 살인죄와 감금치사죄 모두 무죄로 판결하였다.

다만 특이한 점은 7명의 배심원은 살인죄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로 무죄 의견을 냈으나, 감금치사죄에 대해서는 7명 중 5명이 유죄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이 배심원의 의견과 다른 결론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 감금치사죄는 감금죄 또는 감금 미수죄를 범하여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때 성립한다. 즉 감금치사죄는 감금행위를 실행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 감금행위가 성립하려면 피고인에게 피해자가 하차 요구를 했는데도 피고인이 이를 거절하고 계속 차량을 주행함으로써 피해자를 차에서 못내리게 한 사실이 인정되어야 한다.

일단 이에 대한 직접증거는 없다.

 

-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하차 요구를 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피고인의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에 의하면 피고인이 영종도로 목적지를 변경해 운전할 무렵 피해자로부터 영종도는 너무 멀지 않냐. 여기서 택시를 타고 갈 테니 내려줘라.’ 라는 취지의 말을 했으나 그 후 피해자가 별 말을 하지 않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는 것이고

 

- 피고인은 신공항 톨게이트에 진입할 당시 일반차선으로 진입하여 통행료를 결제했는데 이 때 피해자에게서 이 하차하려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을 뿐 아니라 당시 톨게이트에서 근무한 직원들도 사건 당일 통과한 차량들 중 운전자와 동승자 간의 싸움 등 이 사건과 관련해 징후 드에 대해 전혀 인식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

 

 

- 피고인은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신공항톨게이트를 통과하여 약 5km 정도를 시속 80km 내지 90km 정도의 속도로 진행하던 중 피고인이 승용차 뒷좌석에 놓인 소주병의 뚜껑을 열어 한 두 모금 마시자, 피해자가 소주병을 뺏으면서 '나 내릴란다. 택시타고 가겠다'는 취지로 말을 하여 피해자를 내려주기 위하여 속도를 줄였다고 진술하였다.

 

- 사고현장을 조사한 경찰관의 수사보고에 의하면, 최초 사고현장에 임장하였을 당시 자동차 파편 이외에 소주병 조각이 있는 것을 확인하였고, 소주병은 피해자의 신발이 발견된 지점에서 표지판까지 1cm 미만의 조각으로 깨어져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으며, 관련 증인도 수사기관 및 이 법정에서 '피해자의 사체가 위치한 장소로부터 서울 방향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잘게 깨어진 소주병 조각들이 놓여 있었고, 그 양은 소주 반병 가량으로 기억한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

 

 

- 피고인이 피해자의 하차 요구를 들은 후 피해자를 내려주기 위해 속도를 줄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범행의 동기를 토지사업에 관한 의견차이로 드는데, 피해자가 감금상태에서 그 의사에 반하여 피고인의 요구에 응했다고 하더라도 감금상태에서 벗어난 후에는 피고인의 요구를 거절하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동기로 보기에 부족하다.

등을 이유로 감금치사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 살인죄에 대해서는 피고인이 피해자로 하여금 차 밖으로 떨어지게 할 정도의 행위가 인정되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증거가 없다.

 

- 피고인이 피해자를 차량 밖으로 밀어 떨어뜨림으로써 피해자를 살해하였다는 취지로 보더라도, 피고인이 운전대를 잡고 운행 중인 상황에서 한 손으로 승용차의 문을 연 후 피해자를 승용차 밖으로 밀어 떨어뜨린다는 것은 경험칙상 상상하기 어려운 일일 뿐만 아니라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도 없다.

 

- , 피고인과 피해자는 이 사건 당시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고, 피해자의 주거 주차장에서 출발할 당시 승용차의 조수석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은 상태였다는 취지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속 감정인  작성의 감정서의 기재에 비추어 볼 때 피해자가 추락사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피해자 부검 결과 사인 이외의 가격, 약물, 제압 등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등을 이유로 살인죄 역시 무죄로 판단하였다.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과 판사의 의견이 다른 경우 판사는 그 이유를 설명하게 되어있다.

 

재판부는 배심원의 유죄의견의 이유를 종합하면 피고인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비난에 해당하는데, 도덕적 비난여부는 형사재판의 유무죄 기준이 아니라면서 배심원의 의견과 다르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검찰은 항소했다.

 

3.) 2(서울고등법원) - 무죄(다만 예비적 죄명인 유기치사죄에 대해 징역 2)

항소심에서 검찰은 공소장을 변경해 1심에서의 감금치사, 살인의 택일적 기소를 주위적 공소사실로 보고 예비적 공소사실로 유기치사죄, 도로교통법상 사고 후 미조치를 추가하였다.

 

 

 

 

, 감금치사, 살인 모두 무죄라면 유기치사죄, 도로교통법상 사고 후 미조치 위반을 판단해달라는 것

 

재판부는 감금치사와 살인에 대한 판단은 1심과 거의 동일하며

 

 

 

- 더 이상의 구호조치의 필요성이 없는 것으로 명확히 인식될 수 있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교통사고 발생 직후 사상의 결과가 아직 불명확한 경우에는 여전히 운전자 등에게 구호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 또한 이에 대해 피고인 본인도 피해자가 내리는 순간 차가 멈추지 않았는데, 다칠 수도 있는데, ‘어쩌나생각을 하였다. 피해자가 다치지 않을까 생각은 하였지만 피해자가 다쳤다는 확인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차는 하지 않았고 회차하여 빨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만 하였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은 피고인이 최소한 미필적으로나마 피해자가 차량에서 뛰어내릴 때 이에 의해 상해를 입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고 보인다.

 

 

라며 유기치사죄를 유죄로 판단,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의도된 범행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 점, 유족에게 3천만원을 공탁한 점이 참작되었다.

 

다만 이러면서 항소심에서 검찰의 공소제기에 대해 지적한 부분이 있었다. 인정되는 범죄사실에 대해서는 업무상 과실로 교통사고를 낸 운전자가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도주한 경우에 적용하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일명 특가법’)에 여기에 대한 가중처벌을 하는 규정이 있으나, 검찰이 유기치사죄를 기소한 이상 그에 따라 재판한다고 적어두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