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농약 사이다 살인사건(사건내용과 판결문 분석)
1. 사건개요
2015년 7월 14일 오후 2시 43분쯤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금계1리 마을회관에서 전날 초복 마을잔치 때 마시고 남은 사이다를 할머니 7명 중 6명이 마신 뒤 거품을 토하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 페트병 사이다에는 고독성 살충제가 들어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이장이 119에 신고하여 병원으로 옮겼으나 6명 중 2명은 사망하였고 4명은 목숨을 건졌다.
2. 사건의 진행
사건 다음날 김천의료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던 J(86)할머니가 사망하였다.
사건 발생 3일 후인 7월 17일 경찰은 당시 마을회관에 있던 7명 중 유일하게 사이다를 마시지 않은 A할머니(당시 82세)를 용의자로 체포하였다.
A할머니 체포 다음 날인 7월 18일 K할머니(89세)가 사망하였다.
체포 이후 2015년 7월 20일 법원에서 도주 및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며 A 할머니 구속영장을 발부하였다.
이후 검찰은 용의자 A할머니를 2명에 대한 살인 및 4명에 대한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기소하였다.
변호인 측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3. 재판
1.) 검찰의 주장
검찰이 피고인 A할머니를 범인이라 주장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① A 할머니의 집 부근 풀숲에서 뚜껑이 없는 박카스 병이 발견되었다.
② 발견된 박카스 병에서 사이다에 들어있던 것과 같은 성분의 농약(메소밀)이 발견되었다.
③ 발견된 박카스 병과 A할머니 집에서 발견된 나머지 박카스 9병은 유효기간과 제조번호가 동일했다.
④ 할머니의 뒤뜰 담 부근에서 동부메소밀 병이 든 비닐 봉지가 발견되었고, 메소밀 성분 역시 검출되었다.
⑤ A 할머니의 옷과 지팡이, 전동 휠체어에서 메소밀 성분이 검출되었다.
⑥ 회관에 있던 7명 중 A 할머니만 사이다를 마시지 않았다.
⑦ 현장에 있었으면서 신고를 하지 않았으며, 도착한 구급 대원에게도 안의 피해자들의 상황을 알리지 않은 채 그대로 마을 회관 안으로 조용히 들어가 있던 정황
2.) 1심(대구지방법원) - 유죄(무기징역)
국민참여재판으로 이루어진 1심 재판에서 배심원 7명 만장일치 유죄 의견, 양형에서 7명 만장일치 무기징역 의견을 내렸다.
재판부의 판단도 이와 같아 피고인 A 할머니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였다.
피고인 A 할머니 측은 이에 항소하였다.
3.) 2심(대구고등법원) - 유죄(무기징역)
항소심에서도 재판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2심 재판부 역시 피고인 A 할머니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2심 판결문의 구성방식은 판단의 쟁점들을 소개하고, 이 쟁점에 대한 1심 판결의 논리를 먼저 기재한 후, 이에 대한 변호인측의 반박 의견을 기재하고, 이에 대해 다시 2심 재판부가 반박하는 특이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쟁점 ① 범행의 동기가 있는지
- 1심 판단 : 술과 도박,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과의 결혼생활로 누적된 스트레스 등으로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피고인은 화투를 치다가 자신의 속임수를 자주 지적하는 M 할머니와 자주 싸웠다. 이 다툼이 지속되자 분노가 극에 달해 M 할머니 및 평소 자신을 못마땅히 여기는 다른 할머니들도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 변호인의 반박 : 감정표현 등에 소극적인 것은 피고인과 동시대를 살아온 한국여성에게는 특이한 경향이 아니다. 피고인에게는 노년에 피해자들과 화투를 치는 게 유일한 낙인데, 피해자들이 사망하면 그 낙이 없어지는데, 화투를 치다가 화가 났다고 피해자들을 살해하려 할 리가 없다.
피해자 M 할머니와 크게 다툰 이유는 딴 돈 10원을 돌려달라고 했다는 건데 그것 때문에 사람을 죽이려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M 할머니에게 화가 난 거면 혼자 사는 M 할머니 집에 찾아가서 몰래 M 할머니에게만 메소밀을 먹일 일이지 다른 할머니들까지 죽이려 할 이유가 없다.
- 2심 판단 : 일반인의 시각에서 화투를 치다가 다툰 정도로는 살인의 동기로 부족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피고인은 마을회관에 싸우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을 정도로 피해자들, 특히 M할머니와 자주 다툰 것으로 보인다.
범죄는 이성의 논리적인 계산 아래에서보다 감정의 지배하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많으며 살인죄도 예외가 아니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사소한 문제이고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임에도 그 사람에게는 감정의 폭발로 살인이 범해질 수 있다.
특히 무색의 메소밀은 고령의 피고인이 손쉽게 구할 수 있고 다른 액체와 섞는 등으로 어려움 없이 사용할 수 있고 만약 피해자들을 사망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경우라도 피해자들을 혼내 주기에는 문제가 없었으므로, 당시 피고인에게는 아주 적합한 범행수단이었다.
쟁점 ② 피고인이 언제 어떻게 사이다에 메소밀을 탔는지
- 1심 판단 : 2015. 7. 13. 19:00경부터 2015. 7. 14. 14:00경 사이에 위 마을회관에서, 미리 준비한 이 사건 박카스 병(100ml)에 담긴 메소밀을 그곳 냉장고 안에 있는 마시다 남은 1.5L 이 사건 사이다 병에 몰래 부어 혼입하였다.
- 변호인의 반박 : 기록에 의하면 당시 마을회관에는 피고인보다 피해자 J, K, N 할머니가 먼저 와있었다. 그 때 J는 주방 전기포트에 물을 끓였고 이후 실제로 주방에서 발견되어 구조되었다. 피해자들이 모두 거실에만 있지 않고 주방에도 있었으므로 이들의 눈을 피해 사이다에 메소밀을 타는 것은 불가능하다.
- 2심 판단 : 사이다에 메소밀을 타기 위해서는 박카스 병에 들어있던 메소밀을 사이다 병으로 부으면 되는 아주 간단한 작업이다. 박카스 병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별하지 않은 물건이고, 메소밀은 무색, 투명한 액체이므로, 메소밀이 담겨 있는 박카스 병이 발견되더라도 이상한 낌새라고 보이기는 어렵다. 당시 피해자 K는 89세, 피해자 J는 86세, 피해자 N은 77세로 모두 고령이었던 점 등에 비추어 보면, 범행이 아주 곤란한 정도는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위 피해자가 계속해서 주방에 있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위 3명의 피해자들이 모두 거실에 있는 틈을 타 범행을 하였을 소지가 충분하다.
쟁점 ③ 피고인이 마을회관에 가기 전 M 할머니를 찾아간 것은 범행계획을 확인한 것인지
- 변호인의 주장 : 피고인이 평소 피해자 M의 집에 가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나, 범행 당일은 집을 수리한 사실이 있어 수리한 집을 구경하기 위해 피해자 M의 집에 가 보았던 것이다. 피해자 M을 비롯한 피해자들은 매일 마을회관에 모이는데 굳이 피해자 M이 마을회관에 올지 안 올지를 확인해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피고인이 당일 피해자 M을 죽일 마음이 있었다면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 위해서도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더욱더 피해자 M의 집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 2심 판단 : 피고인으로서는 피해자 M이 마을회관으로 오는지 여부가 중요한 관심사였을 것이다. 그리고 피해자 M의 검찰진술에 의하면, 피고인이 평소 마을회관에 가자며 찾아온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범행 당일 마을회관에 가자고 찾아와서 무슨 일인가 의아해 했으며, 잠시 있다가 자신은 먼저 갈 테니 천천히 오라면서 그냥 혼자 갔다는 것으로, 이는 범행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으로 봄이 자연스럽다.
쟁점 ④ 피고인 혼자만 사이다를 마시지 않은 것에 대해
- 변호인의 주장 : 당시 마을회관 냉장고 안에는 콜라, 환타, 사이다 등 각기 다른 3병의 음료수가 있었는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식결과 그 중 이 사건 사이다 병에만 메소밀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피해자들이 어느 음료수를 마실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므로 만일 피고인이 범인이라면 피고인이 피해자들에게 사이다를 마시자고 제안하면서 직접 냉장고에서 사이다 병을 꺼내왔을 것인데, 피고인이 이러한 행위를 했다는 증거가 없다.
- 2심 판단 : 피고인이 사이다에 메소밀을 혼입하였고, 사이다를 마시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는 점에서, 피고인이 이 사건 사이다 병을 꺼내왔거나 사이다를 마실 것을 제안하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한편 피고인은 이 사건 사이다에 메소밀을 혼입한 후 피해자들이 마시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고 마시지 않는 경우에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가졌을 수 있다.)
쟁점 ⑤ 피고인 집 마당의 담, 풀숲에서 발견된 박카스 병과 메소밀 병
- 변호인 측은 다른 진범의 존재를 주장하지만, 변호인의 주장대로라면 그 진범은 피고인을 잘 알고 있고 이 사건의 내막을 알고 있고 피고인이 당일 사이다를 마시지 않은 사실도 아는 사람이며, 피고인의 집에서 발견된 박카스와 제조번호와 유효기간이 동일한 박카스를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구한 뒤 범행에 사용하고 피고인의 집 근처에 버렸다는 것인데, 기록을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존재는 찾아볼 수 없다.
- 변호인의 주장대로라면 진범이 피고인 집의 박카스 병을 훔쳐서 범행에 이용했거나 피고인 집의 박카스의 제조번호와 유효기간을 파악한 후 그와 동일한 박카스를 구해서 범행에 이용했거나 가지고 있다가 범행에 사용한 박카스가 우연히 제조번호와 유효기간이 피고인의 것과 맞아떨어졌다는 얘긴데, 그럴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쟁점 ⑥ 피고인의 옷과 지팡이, 전동차 등 주변에는 왜 메소밀이 묻었는지
- 이런 점들을 살펴보면 피고인의 손과 그 주변에 메소밀이 묻은 경위는 피고인이 메소밀을 사이다에 타는 과정에서 흘리는 등으로 묻은 것으로 보인다.
쟁점 ⑦ 피고인은 피해자들에 대한 구호조치를 하지 않았는지
- 변호인의 주장 : 피해자 O가 가장 먼저 증상을 보였고 O가 마을회관 밖으로 나와 구토를 하는 등 괴로워하여 피고인이 이를 따라나온 것이고 구호조치는 했다. 피고인은 당시 놀란데다 82세의 고령이라 119에 전화는 잘 걸 줄 몰랐기 때문이다.
- 이러한 정황들을 살펴보면 피고인이 피해자들에 대해 구호조치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
쟁점 ⑧ 피고인이 피해자들의 증상의 원인을 사이다라고 정확히 짚어낸 점에 대해
쟁점 ⑨ 기타 정황들
- 피고인은 경찰관이 피고인의 집에서 이 사건 박카스 병을 발견하자 피고인은, 경찰관이 피고인에게 어떤 질문을 한 적이 없고 직접 보여주지도 않았음에도 "병이 헌병이고, 흙이 많이 묻었다."는 말을 하였다. 이는 피고인이 이 사건 박카스 병의 존재와 상태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 피고인은 범행 이후 피해자들의 병문안을 가지도 않고 연락도 하지 않았다. 피고인이 범인으로 의심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의 안녕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수도 있다고는 보이나,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만이 사이다를 마시지 않아 건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미안함을 가지고 있어 최소한 연락 정도는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보이는데, 피고인은 이 사건으로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으면서 면회를 온 가족들에게 억울하다는 하소연이나 진범이 잡혔는지에 관한 질문 등은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판결하며 1심의 무기징역을 유지하였다.
4.) 3심(대법원) - 유죄(무기징역)
대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판결이 확정되었다.
수십 년간 이웃으로 지내온 할머니 2명을 살해하고 4명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80대의 노인은 무기징역이라는 형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