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
1. 사건 개요
1995년 6월 12일 아침 8시 45분경,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동의 모 아파트에서 흰 연기가 발생했다. 이후 9시 10분경, 경비가 화재가 난 것을 알아채고 119에 신고했다. 오전 9시 20분경, 소방관들이 도착하여 10여분 만에 화재를 진화했다. 화재는 안방의 장롱에서 시작되었으며, 장롱과 일부 옷, 커튼과 벽지 일부만을 태웠다.
안방의 화재를 진압한 소방관들이 화장실 문을 열고 발견한 것은 그 집에 거주하는 외과 의사 L(성이 이씨)의 아내 치과의사 C(성이 최씨라서;;)와 갓난아기 딸의 시신이 물이 채워진 욕조에 담겨있는 모습이었다.
부인 C와 딸은 물이 담긴 목욕탕 욕조에서 숨져 있었다. C는 발견 당시 상의가 벗겨지고 팬티가 내려가 있는 상태였으며, 목에는 끈 같은 것으로 조른 교살의 흔적이 나타났다. 그리고 목, 팔 등에는 미세한 찰과상이 발견되었다. 딸 역시 끈으로 목이 졸린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목에서 실 성분이 발견되었다. 욕조의 물에 잠겨 있었다. 이로 볼 때 타살임이 명백하였으며, 화재 역시 장롱에서 불이 난 것으로 보아 명백한 방화였다.
범인은 모녀를 목졸라 살해하고 욕조에 담근 후 집에다 불을 지른 것이다.
현관문은 잠겨 있는 상태였고 별다른 외부로부터의 침입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귀중품이나 금품이 없어진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수사방향은 원한에 의한 살인으로 좁혀졌다.
외부의 침입흔적이 없고 원한에 의한 살인, 죽은 것은 아내와 딸. 의심의 시선은 남편인 L에게 쏠려있었다.
2. L, 수상하다
1.) L의 진술
사건 당일은 L의 개인병원 개업식이 있는 날이었다. L의 진술에 의하면 그는 당일 아침 7시에 아내와 딸의 배웅을 받아 출근을 했다고, 자신이 출근하는 순간까지 두 사람은 분명히 살아있다고 했다.
2.) 시신의 상태
C의 시신은 오전 11시 30분에 검안이 이루어졌다. 시신에는 우측 대퇴부를 중심으로 양측성 시반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참여한 법의학자는 C의 사망추정시간을 오전 3시 30분 ~ 5시 30분으로 예측하였다.
게다가 손가락은 이미 사후 강직이 진행된 상태였다. 이를 보면 사망추정시간은 전날 밤 11시 30분 ~ 아침 5시 30분으로 예측되었다.
뿐만 아니라 부검 결과 C의 위에서 소화가 다 되지 않은 죽상 형태의 밥, 미역국으로 추정되는 미역이 발견되었다. 이는 L이 전날 22:00 경에 C와 같이 밥, 미역국, 조기 등 반찬을 먹었다는 진술에 부합하는 결과였다.
또한 L은 당일 아침에 콩나물국을 먹었다고 진술(했다가 나중에 확실한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고 번복)했는데, C의 위에서 콩나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로서 C가 아침을 먹기 전에 이미 사망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3). L과 C의 불화 및 C의 외도
L은 소심한 성격이었고 C는 자기주장이 강한 성격이었다. 평상시에 부부관계는 L이 C에게 눌려서 사는 구도가 많았다고 주변 가족, 병원 직원들이 진술하였고, C는 평소 시댁식구들에 대한 불만이 꽤 있었으며 L의 개인병원 개업에 따른 경제적 문제로 L과 C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진술이 있었다.
게다가 C에게는 내연남인 인테리어업자 J(전씨임)가 있었다. C는 자신의 개인 병원 진료실에서 J와 성관계를 가질 정도였고, 진료실에서 성관계를 하고 난 다음 진료실 청소를 병원 직원에게 시켰다는 진술이 있었다. 심지어 J에게 ‘L과 성관계를 하면서도 당신(J)이 생각났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사건이 일어난 뒤 3년 전(즉 1992년에 썼던) L이 플로피 디스켓에 C의 외박 때문에 화가 난다는 일기를 쓴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다만 후술하겠지만 L은 C와 J의 내연관계를 몰랐다고 주장)
L이 자신의 딸이 친자인지 의심한다는 정황도 있었다.
C의 친정엄마 D(이 재판을 ㅈ같게 만드는 또 한사람이기도 하다. 이유는 후술)는 L이 C에게 왜 딸이 너만 닮았느냐 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진술했으며, L이 딸에게 별로 애정이 없는 것 같다고 진술한 적이 있다.
4). 위험한 독신녀?
수사팀은 L의 운동복 바지 주머니에서 쪽지를 발견하는데, 이 쪽지에는 각종 영화제목들이 적혀있었는데 L이 공중보건의로 강릉에서 근무하던 시절 <위험한 독신녀>라는 비디오를 2회 빌려서 본 기록이 있었다. 해당 영화에서는 여자 범인이 남성을 죽여 욕조에 시신을 담그는 장면이 나왔다.
L은 끝까지 이 영화를 모른다고 주장했다.
5). 제3자의 범행은 불가능?
외부인의 침입의 흔적이 없는 점, 피해자 C는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라 문을 꼭 잠그는 성격이라는 친정엄마 D의 증언이 있던 것을 감안하면, 범인은 면식범으로 추정되는데, 이에 맞는 제3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변호인측이 주장한 내연남 J는 당시 애인과 같이 있던 알리바이가 있었다.
3. L, 억울하다
1). 사망추정시간 주장에 대한 반박
시반과 시강에 의한 사망추정시간은 오차범위가 너무 크다. 심지어 시신은 일반적인 상태가 아닌 욕조에서 온수에 담겨져 있는 상태였다.(발견 당시에는 미지근한 온도였던 상황, 수도꼭지가 좌로 15도 꺾여있었다고 함. 끄고 간 그대로 수도를 틀어서 같은 양의 물을 받아보니 43도였음)
이로써는 정확한 사망추정시간이라고 할 수 없다. 게다가 수사팀은 시신 발견 당시 욕조 물의 온도를 측정하지 않았고, 법의학자가 현장에 가서 참여한 것도 아니었다. 이는 나중에 재판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하게 된다.
위의 소화상태에 따른 사망추정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위의 소화상태는 그 당시의 건강 상태, 스트레스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또한 L은 아침을 같이 먹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아침을 차려먹고 상을 치우려 하자 C가 자기도 아침을 먹어야 하니 치우지 말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또한 전자레인지에서는 C가 아침, 저녁 식후로 복용하는 한약이 있었다. 이는 C가 아침을 먹는 시간까지 살아있었다는 정황이 될 수도 있다.
또한 C는 사망 당시 콘택트렌즈를 낀 채로 화장은 하지 않은 채 발견되었는데, 이는 C가 아침에 출근을 준비하던 때까지는 살아있었다는 정황이 될 수 있었다.
2). 둘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C가 시댁에 불만이 있거나 하는 점은 정도가 심하지 않았고, 사이도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 주장이다. 또한 내연관계는 모르고 있었고, C와 J는 C가 J에게 5천만원을 빌려주고 핸드폰을 사주는 일이 있었는데 J가 몇 번 돈을 제때 갚지 못하자 사이가 멀어졌고, 이후에 아이가 태어나자 더더욱 내연관계가 멀어졌다는 것이 이후 확인되었다.
또한 L의 개인병원 개업비용 상당부분을 C가 부담했기 때문에 L은 C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고, 그에 따라 사이도 더 가까워졌다고 주장했다. 개인병원 개업 전에 처가식구들과 괌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C가 상기한 한약을 먹은 이유는 아이를 더 가지기 위해서였다.
3). 제3자는 정말로 불가능할까?
당시 아파트에는 주차장 모서리 옆 계단으로 올라가 비상구 쪽의 담을 넘으면 경비원 모르게 피해자의 집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이후 재판과정에서 변호인이 증명해냈다.
또한 당시 현관문은 보조키로만 잠겨 있는 상태였는데, 그 현관문 보조키는 총 5개로 1개는 C의 핸드백, 1개는 L이 가지고 다녔고 집안 서랍에서 2개가 발견되었다. 나머지 1개의 행방은 밝혀지지 않았다.
4). 화재
화재는 9시 10분경에 신고되었다. 또한 경비원이 연기를 목격한 시간은 일러야 8시 20분이었다. 7시에 출근한 L이 범인이라면 이 화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참고로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피고인이 최종적으로 무죄를 받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게 바로 이 화재다.
용의자로 지목된 이는 단 한명, 그리고 그 한명의 용의자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다.
경찰과 검찰은 L이 범인이라고 확신했고 이후 L을 살인 및 현주건조물방화죄로 기소하고 그 길고 긴 소송전이 시작되게 된다.
4. 재판의 경과
이 사건 재판은 정말 혼돈의 카오스였다. 일단 재판부터 총 5번의 재판을 거쳤으며, 재판 내에서도 피고인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계속해서 진술을 번복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특히 피고인 L, C의 친정엄마 D 이 둘)
분명히 수상하긴 한데, 뭔가 미심쩍은 것은 판사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재판마다 결과가 뒤집히는 재판이 펼쳐진다.
1.) 재판의 쟁점
① 피고인에게 아내와 딸을 살해할 충분한 동기가 있는가?
② 피해자 C와 그 딸의 사망추정시간을 특정할 수 있는가?
③ 피고인이 정말 범인이라면 화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④ 피고인의 진술 중 일관성 없는 부분에 대한 신뢰성 여부 및 이를 이유로 유죄를 선고할 수 있는가?
2.) 1심(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현재 서울 서부지방법원) - 유죄 (사형)
1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피고인 L을 유죄로 판결, 사형을 선고했다.
- C와 J의 불륜관계를 알았던 것으로 보이는 점, 성격 차이로 인한 불화, C와 시댁과의 갈등 등을 보아 살인의 동기가 있다고 보인다.
- 시반, 시강, 위 소화상태 등으로 사망시간을 계산해볼 때 아침 7시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 현장의 우유병, 부엌 및 싱크대의 상태, 화장실 벽면에 물기의 흔적이 없는 점 등을 봤을 때 피해자는 아침까지 살아있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 범행이 가능한 시간, 조심성이 많은 피해자가 문을 열어줄 면식범, 목격자가 되지 못하는 아이까지 죽여야 할 이유가 없는 등 제3자의 범행일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 경비원이 최초로 연기를 목격한 시간이 당일 08시 20분, 컴퓨터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하자드1으로 돌려본 결과 발화시간은 당일 06시 40분 ~ 07시 10분으로 추정되어 피고인의 방화로 보인다.
등을 이유로 유죄,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3.) 2심(서울고등법원) - 무죄
항소심인 2심 재판에서 결과가 뒤집어진다. 사형판결을 받았던 피고인 L의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 1심에서 본 시반이 물의 온도나 시신이 놓인 자세 등으로 봤을 때 정말로 사망시각을 추정할 수 있는 양측성시반인지가 확실하지 않다.
- 물의 온도를 제대로 감안하지 않은 1심에서 본 시신의 강직으로 유죄를 단정하기 어렵다.
- C의 친정엄마 D는 쌀과 당근, 고기를 넣고 끓여준 죽을 주었고 사건 전날 21:00에 죽을 먹었다는 통화를 했다고 증언했으므로, 정말로 저녁을 먹고 사망했다면 위에 밥이 남아있을 때 더 소화가 오래 걸리는 당근 같은 야채도 발견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아 피해자가 아침에 미역국을 먹었을 수 있다.
- 전자레인지에 아침, 저녁 식후에 먹는 한약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아침까지 살아있었다는 정황으로 볼 수 있다.
- 현장의 우유병이 깨끗한 빈 병이었다고 보아 피해자가 새벽에 우유를 타서 먹이기 전에 사망했다고 1심 재판부는 봤으나, 현장의 우유병을 조사한 결과 밑바닥에 우유 찌꺼기가 확인된 걸로 보아 새벽에 우유를 먹였을 가능성이 있다.
- 피해자 C는 사망 시 콘택트렌즈를 끼고 있던 것으로 보아 아침에 살아있었다는 정황으로 볼 수 있다.
- 피고인이 아내와 자식을 살해할 동기가 주어진 사정만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 1심에서 본 화재 시뮬레이션의 조건설정이 실제환경과 차이가 있고, 경비원이 화재를 목격한 시간을 좀 더 정확히 계산하면 피고인이 출근한 이후로 나온다.
- 경비원 몰래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었다.
등을 이유로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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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심(대법원) - 유죄취지 파기환송
그러나 또 3심 대법원은 이를 유죄취지로 파기환송한다.
이 판결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황이 있고 유리한 정황이 있는데 모든 정황과 증거를 부분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봤을때는 유죄의 방향이 맞는데도 유리한 정황만 지나치게 골라서 무죄의 판결을 했기 때문에 심리에 위법이 있다고 봤다.
대법원은 사망추정시간에 대해서도 다수의 법의학자들의 의견인 피해자들이 오전 7시전에 사망한 것이라고 판단했고,
위 내용물에서도 죽의 당근이 발견되지 않은 것은 이유식 용으로 잘게 끓이느라 당근이 풀어져 빠르게 소화가 되어 발견이 되지 않았다고 판단,
제3자의 범행 가능성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문을 열어줘야 하며, 그러한 행동은 피해자의 성격과 행동과 맞지 않다는 친정엄마의 증언,
제3자가 범행을 저지르기에는 1시간 40여분의 시간은 다소 촉박해 보인다는 점 등을 이유로 항소심의 무죄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판결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5.) 파기환송심(서울고등법원) - 무죄
대법원에 의해 파기환송되어 다시 재판이 이루어진다.
파기환송심의 양상은 두 가지다. 대법원이 하라는 방향대로 따라가거나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거나
결론부터 말하면 후자였다.
피고인측은 스위스의 법의학자 토마스 크롬페처를 증인으로 섭외하여 재판에 나섰고 무죄의 알리바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과 현장검증에 나섰다.
. 화재실험
피고인측은 당시 1800만원여짜리 세트로 집안 장롱 등 안방의 상태를 재현하고 전문가를 섭외하여 재현실험을 펼쳤다. 재판부도 이 실험을 관전했으며, 실험결과 불을 놓은 지 6 ~ 8분이면 밖에서 연기를 목격할 수 있었고 안방에서 나간 연기가 외부 사람들에게 목격되는 오차를 고려해도 1~2분 차이였다.
또한 방 안의 산소가 있는 상태라는 것을 보여주는 흰 연기는 오래 걸리지 않아 연소가 진행되어 산소가 부족한 상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검은 연기로 바뀌는 것을 보였다. 화재신고는 09시 10분, 연기의 목격시간은 빨라야 08시 20분, 07시에 출근한 남편이 방화를 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 법원의 판단
언급했지만 재판의 쟁점은
① 피고인에게 아내와 딸을 살해할 만한 충분한 동기가 있는가?
② C와 딸이 당일 07시 이전에 사망했다고 특정할 수 있는가?
③ 화재 및 제3자의 가능성 문제
④ 피고인의 진술번복, 거짓말 등의 진술 신뢰성 문제를 유죄의 증거로 할 수 있는가?
파기환송심은 이렇게 판단한다.
- 어느 정도 둘 사이에 다툼이 있었거나 불륜사실이 있던 건 맞으나 그렇게 심하게 보이지 않았던 반대의 정황도 충분히 존재하며, 사건 발생 근처에는 많이 해소되었고, C의 도움을 크게 받아 개인병원을 개업할 수 있었던 피고인이 개인병원 개업을 앞두고 C와 딸을 살해할 마음을 먹었다고 보기 힘들다고 판단(살해 동기 인정X)
- 다수의 학설은 사건 당일 07시 이전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이 사실이나, 변호인측의(토마스 크롬페쳐) 반박(수사시 법의학자가 현장에 가지 않음, 시신이 온수에 담겨 있었던 점, 위 내용물은 수면시에는 평상시보다 소화가 느리므로 아침때도 저녁에 먹었던 음식물이 위에 남아있을수도 있으며 등)이 마냥 모순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사망시간의 추정이 정확한지 의문이 든다고 판단(피해자가 07시 이전에 사망했다고 특정X)
- 피고인이 진술을 번복하고 중간중간에 거짓말을 하는 것 같긴 하지만(대표적으로 내연관계를 추궁한 적이 있는데도 C와 J의 내연관계를 몰랐다고 주장한 점. 이는 용의자로 수사받는 피고인 입장에서는 불륜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강력한 살인동기로 추궁받을까봐 알지 못했다고 진술했을 수 있다고 언급) 그렇다고 그 주장이 아예 배제할 만한 것은 아니고 이것을 유죄의 결정적 증거로 삼기는 무리라 판단
- 피고인의 팔에 남은 손톱자국은 원인이 불분명하지만, 피고인의 손톱자국이라고 볼 수도 있으며 C의 친정엄마 D도 현관문 앞에서 두 팔을 서로 엉키게 잡은 채 쭈그려 앉아있는 피고인을 봤다고 증언했으므로 이를 유죄의 증거로 보기엔 부족하다고 판단
- 잘려진 커튼 줄이 범행도구라는 것은 가능성에 그치는 것이지 인정하기에는 밝혀진 게 부족하다고 판단
- 위험한 독신녀 비디오는 두번째 대여가 사건발생 8개월 전이므로 연관성이 부족하고, 연관성이 있어도 이것으로 유죄의 정황을 삼기는 무리라고 판단
- 사람의 행동, 감정의 표현, 반응, 언행 및 태도는 사람마다 다른 것이고 반대해석도 가능한 것으로 보아 사건발생 후 피고인의 태도가 수상하다는 검찰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
- 콘택트렌즈, 한약봉지 등 아침까지 살아있었다고 볼 수 있는 정황이 있다고 판단
(여기서 C의 친정엄마 D는 C가 화장을 지우기 전에는 렌즈를 벗지 않는다고 진술하다가 나중에는 순서를 반대로 진술을 번복하기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며 재판부에게 신뢰를 받지 못한다.)
- 제3자의 범행이 불가능하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는
· 침입이 어렵다 → 경비원 모르게 708호까지 갈 수 있는 뒷길의 존재를 증명함, 현관문 보조 열쇠 1개는 행방이 밝혀지지 않았음
· 제3자라면 굳이 아기까지 죽일 이유가 없다. → 그거야 검찰의 추정일 뿐 모르는 일
· 제3자가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 피고인이 출근한 7시부터 화재 발생 추정시각인 8시 40분까지 1시간 40분이면 절대 짧은 시간이 아님
· 굳이 C의 옷을 벗겨 강간을 위장하고 방화를 저지를 이유가 없다. → 옷을 벗겼다고 강간을 위장했다고만 볼 것은 아님. 방화는 오히려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황임
라고 판단
- 화재에 대해서는 당시 상황 조건에 피고인측 실험이 더 부합해 보이고 옷이 가득한 장롱이라 연소할 재료가 많은 장롱 안에서 발화가 되었는데, 화재를 지연시킬 특별한 장치나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이상 검찰의 주장처럼 오랜 시간 지연발화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판단. 화재발생시간은 피고인의 출근 이후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 판단
거기다 피고인이 범인이라면 굳이 불을 질러서 시신을 빨리 발견되게 할 이유가 없다는 점이 유리하게 해석되었다.
2001년 2월 17일, 서울고등법원은 대법원의 파기환송심에 대해 다시 한 번 무죄를 선고한다.
6.) 최종장(대법원 재상고심, 무죄)
2003년 2월 26일, 대법원은 형사재판은 피고인이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는 것이 아닌 검찰이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하는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며 검찰의 재상고를 기각, 피고인 무죄의 원심을 확정한다.
피고인 L, 최종 무죄
이로써 그는 아내와 딸을 무참히 살해했다는 혐의에서 8년여만에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C와 그 딸을 살해한 범인은 찾지 못한 채 사건은 미제로 남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5번의 재판, 사형 - 무죄 - 유죄 - 무죄 - 무죄의 극적인 롤러코스터는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된다.